내가 생각하는 정치

탈당과 입당 1편 : 조경태와 진영의 달라진 운명

공허한 악의야 2020. 10. 18. 10:28

왼 : 조경태,  오 : 진영

 

 

요즘 옵티머스 사건이 화제가 되고 있다. 여당인사가 관련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가, 야당이 개입되었고 검찰이 선택적 수사를 한다는 이야기도 최근 나왔다. 내가 관련자도 아니고 수사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 사건의 전말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다만,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이 옵티머스 펀드에 수억원을 투자했다고 한다.

 

 

진영이 피해자라고 주장하는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피해자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할 뿐이다. 근데.. 진영장관이라는 말이 익숙하지 않은가? 그의 선거이력을 보자.

 

 

 

 

그는 17, 18, 19, 20대 국회의원이었으며 4선 의원이다. 선거에는 나올때마다 당선되었다. 근데, 2016년에 그의 당명이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원래 국민의힘 계열이었다. 게다가, 박근혜 정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을 한 자였다. 근데, 박근혜 정권에서 어떻게 장관이 될 수 있었을까? 단순 우연일 뿐일까? 그의 정치이력을 살펴보자. 그는 위에서 봤듯이 2004년 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처음 당선되었다.

 

 

 

 

초선이었던 그는 국민의 힘 전신인 한나라당에서 당대표 비서실장을 한다. 그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박근혜였다. 이때부터 그와 박근혜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노무현 탄핵으로 역풍을 받던 시기에 오로지 박근혜의 힘으로 그래도 개헌저지선은 지켰던 총선이었다. 그당시 서울서 3석도 힘들다는 분석도 있었으니 박근혜가 아니였으면 그는 당선도 되지 못한 채 정치에서 사라질 가능성이 큰 사람이었다.

 

 

그는 박근혜 당대표 시절 첫 비서실장이었으며, 그녀가 집권하고 난 뒤 첫 보건복지부 장관이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와 노인기초연금과 관련된 갈등이 생겼고, 그는 사표를 낸다.

 

 

 

 

친박 실세였던 그는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며 공천에서도 컷오프된다. 그래서 새누리당을 탈당한다.

 

 

 

 

 

18일 기자회견에서는 무소속으로 출마할 수 있다고 했지만, 21일 결국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한다. 그후 승승장구 했으며,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도 장관을 하게 된다.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하지만, 그가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한 것은 신의 한수였다.

 

 

이데올로기의 차이가 있는 사람이지만, 윤상현 등의 대부분의 인물은 공천에서 컷오프되면 무소속으로 당선된 후 당으로 되돌아온다. 2016년 총선 당시 이해찬도 그랬다. 지역기반이 튼튼했던 그가 무소속에 머물지 않고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한 것은 자신의 정치 마지막을 깔끔하게 만드는 수였다. 박근혜에 찍혀 치명상을 입고 정계에서 사라질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박근혜가 불명예 퇴장을 했다.

 

 

 

 

올해 치루어졌던 21대 총선을 불출마하고 행정안전부 장관으로 커리어 마지막을 장식한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정반대 정부에서 한번씩 장관을 해본 몇 안되는 인물 중 하나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탈당과 입당으로 꽃길루트를 탄 진영과 달리,  탈당과 입당을 통해 흙길루트를 타게 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조경태이다.

 

 

 

 

그는 현재 5선 의원으로, 진영처럼 2004년 17대 국회의원으로 처음 당선되었으며, 2016년 탈당과 입당을 하며 당을 옮겼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 후보 당시 그의 정책보좌역을 맡았으며, 친노라 불리는 핵심멤버 중 하나였다.

 

 

 

 

노무현 탄핵추진 사건은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과 당시 야당인 민주당이 합작해서 만든 작품이었다. 이에 친노들은 대거 반발했으며 열린우리당이라는 새로운 당을 만들어 옮겨갔다. 그 후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압승했다. 그 열린우리당을 만들기 위해 민주당을 탈당한 초기 민주당 정치인 중에 한명이 조경태였다. 계파로 따지면, 친노 중에 친노라고 할 수 있었다.

 

 

 

 

그는 친노였지만 친문은 아니였다. 오히려, 문재인 저격수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리고 친노 패권주의도 비판하며 탈당을 감행했다. 

 

 

 

 

탈당한 바로 다음 날 그는 새누리당에 입당했다. 새누리당과 이야기를 마친뒤 탈당을 한 모양새다. 그당시 그의 탈당은 어느정도 화제가 되었다.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18대 총선 부산 당선 현황
19대 총선 부산 당선 현황

 

 

민주당에게 부산은 지금과 달리, 아니 지금도 어느정도는 그렇지만 지금보다도 훨씬 더 험지였다. 위에는 2008년에 치루어진 18대 총선과 2012년 치루어진 19대 총선의 부산 지역구 현황이다. 19대 총선에서는 녹색 혼자 민주당이었고, 19대 총선에서는 노란색이 민주당이었다고 보면 된다. 파란색과 빨강색은 한나라당, 새누리당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당에게 부산 당선자는 귀했다. 그렇기에 발언권도 어느정도 있었고 언론에서도 기사에 그의 발언을 실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존재감이 없다.

 

 

 

 

이력을 보면 뭔갈 많이 하기는 했다. 하지만, 민주당 부산 국회의원이라는 메리트가 없어졌기에 전처럼 언론과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요즘 그는 김종인 비대위원장을 비판하고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가 민주당에 계속 남아있었으면 어땠을까? 장관 한자리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더라도 당에서 그당시처럼 어느정도 힘은 있었으리라.

 

 

다음편이 언제 나올지는 모르겠다. 중간기간이라 바빠 한동안 글을 못올릴듯 싶다. 다음편이 나온다면 제목은 "탈당과 입당 2편 : 탈당선택의 기로, 박영선과 이언주"일 것이다. 글을 쓴다면 그 글은 재밌을 것이니 기대해주셔도 좋을 듯하다.